‘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불안에 지배되지 않고 만족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건이라면,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면 쉽게 초조해진다.
행복해지기 위해 서는 새로운 것을 성취하거나 소유해야만 할 것 같고, 그로 인해 나의 결핍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행복을 바라게 되면 결핍이 보인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불안의 원인은 행복의 조건에 있다.
나는 지금의 내 상태에 만족하고 감사함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반면, 내 무의식 아래에선 성취와 소유를 원하고 있다. 적당한 선망은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이는 인간의 유익한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필요악이다.
필요악 (必要惡)
[명사]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악.
흥미로운 단어이다.
어째서 우리에게 ‘결핍’과 그로인한 ‘불안’이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걸까?
알랭드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유럽의 상인들이 인디언에게 욕망을 길러내려 한 사실을 소개한다.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더 많은 동물가죽을 얻어내고 싶었다. 이를 위해 인디언들에게 이전 까진 그 존재도 알지 못하던 유럽의 사치품을 갈망하도록 유도한다. 결과적으로 인디언들은 이전에 자연을 즐기던 시간을 수천 마리의 동물을 살생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행복해질 수 없었다.
오늘날의 ‘소비자 심리’, ‘마케팅 심리’이 학문으로 다뤄지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열망을 심을까를 연구한다. 이를 전략적 마케팅이라 칭한다.
소비가 없으면 기업의 존립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와 같은 기업의 노력은 정당하다. 다만 소비자로서의 올바른 교육을 받지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열망과 기업이 만들어낸 열망을 구분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극에 달한 이 자본주의 시대에 ‘돈’ 이라는 교환가치 매개물은 ‘수단’ 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인간은 존재만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는 행위, 자연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즐기는 것들로 이미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이 나의 존재를 멋대로 정의 내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자신에게 만족을 줄 조건들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사고하기를 멈추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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