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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눈 깜빡

개인의 취향과 염치없음에 대하여 - 영화 소공녀를 보고

개인의 취향과 염치없음에 대하여

영화 소공녀를 보고

 


주인공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애인만 있다면 부족함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이 3가지를 위해 일을 하여 돈을 벌고, 경제적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그녀는 빚없이 사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확한 취향에 따라 철저히 소비한다. 어느 날 물가상승으로 집세도 담뱃값도 올라 곤혹스러워 하던 그녀는 곰곰이 생각한 뒤 집을 포기한다. 집을 포기하니 자신이 좋아하는 술과 담배를 계속해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옛 대학시절 밴드크루들의 집을 전전하게된다. 집이 있는 그들의 삶은 미소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지만 저마다 숨기고 있던 자신들의 사연과 눈물을 들킨다. 미소는 그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요리 혹은 청소와 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로 감사를 전한다.

 

하필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술과 담배이고 하필 그녀의 직업이 가사도우미라는 설정은 잔인할 만큼 그녀의 삶의 방식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의 모든 말과 행동들은 너무나도 납득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집을 가진 친구들보다 낫다. 물질적 소유가 아닌 정신의 부요함이 그들보다 더욱 풍요롭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또 어떤 상황들을 대하는 그녀를 볼 때에 그녀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 있는 자체를 받아들이고 존중해준다. 그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치유가 되는 장면들이 있다. 주인공 미소의 철학은 굉장히 간단하다. 자신이 원하는 취향의 기호만 충족이 되면 그 외의 것 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체면의 문화가 있는 나라에 사는 사회성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러한 철학은 삶으로 살아 내기 매우 어렵다. 집도 없이 친구들 집에 얹혀서 하루의 숙식을 해결하는 신세임에도 자신의 확고한 생각과 취향을 고집하는 미소에게 한 친구는 염치 없는 취향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한 사람의 취향이 염치없을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표현하고 계속해서 지속하는 것, 그것이 설령 술과 담배라고 해도 그 자체를 염치없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히려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이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 아닐까 싶다.

 

미소라는 사람이 내 집에 방문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민낯에는 어떠한 추악과 연민이 존재할지 궁금하다. 또 미소는 내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지도나는 그녀에게 평온한 쉼을 제공할 수 있었을까? 영화의 후반부에는 결국 미소가 좋아하는 위스키의 가격도 올라버린다. 그리고 미소는 집 구하기를 포기하고 한강변 텐트에서 자신의 주거를 해결하며 매일 먹던 약을 포기하여 하얀 백발이 되어버린다. 이 마지막 장면들 에서는 미소가 무엇을 포기하고 선택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녀의 얼굴은 나오지 않아 미소가 어떤 감정인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저 저렇게 살다가는 더 포기할 것도 없이 사라져 없어져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위태로운 마음만들 뿐이다. 그녀가 그렇게 사라진다면, 어쩌면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은 삶을 살아낸 한 사람의 일대기로서 의미가 있지만 너무나 먹먹한 마음이 든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한솔이는 헌혈을 하고 영화표를 받아야만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에 자신의 무능함으로 사랑하는 이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갖고있다. 미소와 한솔의 데이트 장면들을 보며 눈물이 많이 났는데, 내 대학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순수한 사람 간의 사랑과 애뜻함이 느껴져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장난을 치는 평범한 장면들에서도 그리움과 연민과 동경의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사우디로 2년간 떠난다. 돈을 벌어 미소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2년 뒤의 내용에 대해서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지난 겨울 나왔던 자이언티와 이문세가 부른 이란 곡의 뮤직비디오가 이 영화의 에필로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리없이 연결되었다. 뮤직비디오 장면들로 추측하여 상상력을 덧붙여본다면 2년뒤 한솔이 한국에 왔을 때 미소는 없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제목을 보며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미소의 유품과 함께 하룻밤을 고급 호텔에서 묵는다. 자신이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좋은 잠자리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우리가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포기하는 것 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한 우리는 낮은 우선순위의 것들을 지속시키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얼만큼 포기하며 살아갈까? 두개의 삶의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버겁다. 이 버거운 삶에 희미하게 나마 응원을 해주는 미소의 존재가 고맙다.